최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뒤늦게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 중 '염오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는데, 창피한 이야기지만 '혐오감'의 오타라고 순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3초 후, 이렇게 유명한 책에 이런 오타가 아직 남아있을 리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곧바로 구글 검색을 했습니다.
당연히, 염오감은 오타가 아니었습니다.
나름 남들보다 국어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던 터라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거라는 생각에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염오감이란 무엇인가?
염오감(厭惡感, Disgust)은 기본적인 인간 감정 중 하나로, 혐오와 불쾌감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정서입니다. 이 감정은 주로 본능적인 반응으로, 부정하거나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대상이나 상황에서 생깁니다. 음식, 썩은 것, 해충 같은 대상에 대한 생리적 반응에서부터 도덕적 혐오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염오감은 종종 우리의 생존 본능과 관련이 깊습니다. 유해한 것, 즉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음식이나 물질을 피하려는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은 단순히 물리적 대상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기준에 의해 형성되기도 합니다.
채식주의자에서의 염오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주인공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이 염오감을 통해 드러납니다. 여기서 염오감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는 주인공의 선택에 대한 거부감으로 발전합니다.
소설 속에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는 것은 그녀의 신체와 정신이 고통받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자,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의 저항을 의미합니다.
그녀의 남편이나 가족들은 그런 그녀의 선택에 대해 불쾌감, 혐오감을 느끼며 점점 더 강한 억압을 가하려 합니다. 이때 염오감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주류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거스르는 이방인에 대한 배제와 억압을 상징하는 역할을 합니다.
염오감의 상징성과 철학적 의미
염오감은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기제 중 하나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 대상이 자신의 '경계'를 위협한다고 느낄 때 이 감정이 작용하는 것이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규범을 벗어난 행동이나 태도는 불편함을 유발하고, 이로 인해 염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채식주의자에서는 육체와 정신,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자유가 부딪히는 순간마다 염오감이 핵심적인 감정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음식을 통해 표현되는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인간이 가진 폭력성과 억압 본능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염오감은 단순한 혐오의 감정을 넘어,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정서입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염오감은 음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 대한 거부와 이에 대한 억압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상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