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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부》 리뷰, 이병헌, 유아인의 숨막히는 연기

purplusnow 2025. 3. 2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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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리뷰 — 바둑판 위에 새겨진 인간의 길

《승부》(2023)는 실존하는 바둑기사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승과 제자, 두 천재의 대결 속에 숨겨진 인생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천재 제자가 스승을 넘는다’는 흔한 서사의 전개를 따르지 않는다.


《승부》는 바둑이라는 소재를 통해 세대 교체, 승부의 아이러니, 사람 대 사람의 깊은 정서를 섬세하게 풀어간다.
스포츠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감정과 철학에 더 가까운 영화다.


바둑이라는 세계를 담담하게, 그러나 깊게 그리다

승부
승부

 

영화는 바둑을 모르는 사람도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대국 장면을 설계했다.


빠른 편집이나 음악으로 긴장감을 억지로 만들지 않고,
조용히 대국자들의 숨소리, 돌을 내려놓는 촉감, 눈빛을 통해 긴장을 쌓아 올린다.

 

마치 관객이 실제 바둑판 옆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듯한 밀도 높은 연출은
스포츠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나 연극을 보는 느낌에 가깝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결정적 대국 장면은
관객에게 “이 한 수가 인생을 바꾼다”는 절박함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두 배우, 두 인생

이병헌은 조훈현 역을 맡아 무게감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조훈현이란 인물은 단순한 ‘승부사’가 아니다.
‘천재’라는 이름에 짓눌린 인간이며, 시대가 만들어낸 고독한 스승이다.

 

이병헌은 절제된 연기와 표정만으로도
조훈현의 내면에 자리한 외로움과 후회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유아인은 이창호의 ‘무표정 속의 승부욕’을 훌륭히 재현한다.

 

실제 이창호가 그랬던 것처럼,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그 안에 숨겨진 도전과 승부욕이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이 두 배우의 대립은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이자 감정의 핵심이다.

 

이 영화는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보다,
말없이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얼굴만 비추어도 충분히 숨막힌다.


승부의 아이러니

《승부》는 단순히 ‘이겼다’, ‘졌다’를 넘어서,
이기면서도 슬프고 지면서도 허무한
승부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담아낸다.

 

스승이면서 상대가 되어야 하고,
가르쳤기에 언젠가 반드시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정면에서 마주해야 하는 숙명.

 

《승부》는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의 감정을 묵직하게 때린다.


평론가적 시선에서

이 영화는 관객을 크게 웃기지도, 눈물 쏟게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정적(靜的)인 감정선 속에서
바둑과 인생의 공통점 —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수(手)를 두고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새긴다.

 

다만,
바둑의 규칙이나 역사적 맥락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바둑을 모르는 관객은 초반 몰입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는 진정한 의미에서
'바둑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인생을 다룬 영화'로서
조용하고 깊게 남는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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